신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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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북
- 춘추좌전(詩經) 파트2
- 저자임동석
- 출간일2025-02-25
- 정가45000원
- 페이지826면
- 판형46배판/반양장
- ISBN979-11-94677-04-8 (05140)
- 출판사삼호재
무려 19만 6천 8백여 자나 되는 이 방대한 저술을 역주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참 애 많이 썼다. 세상에 완벽함이란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자기 합리화에 만족한다.
자료를 모아 선뜻 손을 대었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 ‘내가 왜 이 짓을 하나?’하고 후회해본 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에게는 단순 반복 작업을 울면서라도 그냥 해내는 묘한 힘이 있다. 이는 어릴 때 깊은 산속에서 살 때 배운 철리(哲理)였다. 나뭇짐에 실어 온 큰 등걸나무에 톱질을 하면서 지루하고 힘이 들면, 곁에 공깃돌을 한웅큼 가져다 놓고, 10번에 하나씩 옮겨놓으면서 5백 번을 썰면 끊어지겠지 하던 의지였다. 그런데 해보면 실제 백 번이 못 가서 대개 썰어졌다. “당연한 고통은 참고 넘겨라. 그것이 이치에도 맞다”라는 자기 최면이었다. 이 작업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컴퓨터에 앉아 있기 일쑤이며 풀리지 않던 부분이 다른 자료와 교차 검증하다가 해결되자 나도 모르게 성취감에 들떠 점심 식사도 거른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자가 말한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내 일찍이 종일 밥도 먹지 아니하고, 밤새 잠도 자지 아니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유익한 것이란 없었고, 공부만한 것이 없었다)가 바로 이러한 경지리라 감히 깨닫는 자체가 송구스럽다.
금년 새해 벽두 북경에 갔다가 책방에 들러 다시 자료를 눈에 띄는 대로 욕심내다가 그만 너무 많아졌음에도 이를 들고 오다가 우편으로 부칠 것을 그랬나 하고 끙끙대며 수속을 마치고 인천 공항을 나서면서는 그래도 얼른 볼 수 있으니 고생값이 있으렷다 하고, 안위의 기쁨에 매서운 한겨울 추위도 반가웠다.
아니 조선시대 같았으면 이러한 책을 어찌 이토록 쉽게 얻어볼 수 있었겠는가하는 비교우위 행복감에 젖은 공항 리무진 버스 창문 밖으로는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가는 밤빛 찬란한 서울의 한강 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시 작업은 이어졌지만 지루한 재점검은 다시 반년 넘더니 또 한 해가 흘렀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미진하거나 아차 잘못된 탈자, 오자, 오류가 나를 주눅들게 하였다. 마치 비밀번호를 숨겨놓은 것과 같은 문장, 수수께끼를 풀도록 숙제를 안겨주는 것과 같은 내용, 역사적 배경과 인물의 특징, 242년의 얽히고 설킨 수많은 제후국들의 국내외 사정, 족보가 뒤얽힌 경대부들의 가계(家系), 게다가 그 많은 등장 인물의 이름도 한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명(名), 자(字), 시호(諡號), 작호(爵號), 배항(排行), 읍호(邑號), 봉호(封號), 실호(室號), 관호(官號), 직호(職號), 위호(位號), 연호(緣號), 습호(襲號), 족호(族號), 통호(通號), 묘호(廟號), 존호(尊號), 비호(卑號), 천호(賤號), 속호(俗號), 별호(別號), 참호(譖號), 변성(變姓), 개성(改姓), 칭공(稱公), 칭왕(稱王), 씨(氏), 성(姓), 아명(兒名), 지명(地名), 심지어 쌍성첩운(雙聲疊韻)에 의한 이기(異記) 등 수십 개씩 이칭(異稱)으로 불려, 일일이 인물마다 표를 만들어 대조해가며 작업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울러 내용도 충(忠)과 적(賊)이 무시로 바뀌는 끝없는 반전에서는 그 원인과 과정을 찾아내지 않으면 거꾸로 이해될 부분도 숱하다.
그러나 그 많은 인간군상, 봄풀 나서 봄 한 철 살고, 사람 나서 한 일생 산다는 만물의 원리를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과 배신의 굴레 속에서 날뛰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말 너무 복잡하여 어떻게 손을 대고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이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보다 유가(儒家)의 경전(經典)이라는 엄숙한 명제 앞에 내 기분 나는 대로 마구 풀이해 나갈 수도 없었다. ‘미언대의(微言大義)’라는 대원칙을 숨겨놓았고, 포폄(褒貶)과 시비(是非)를 바로잡고자 성인 공자가 찬집했다니, 범속한 사람이 다루어도 될까 적이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였다. 아니 두예(杜預)는 천재성을 발휘하였고 스스로 ‘좌전벽(左傳癖)’이 있다고 자처할 정도였으니, 내용을 훤히 알고 좋아서 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집해(集解)’는 가위 믿을 만하고 경탄스럽다. 마찬가지로 ‘정의(正義)’를 붙인 공영달(孔穎達)이나 기타 수많은 학자들도 그 당시 공구서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인데, 머릿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지 않고서야 어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착종(錯綜)해 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도 ‘이미 벌려놓은 춤’(已張之舞)이니, 어쨌거나 추고 마무리는 하고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제 겨우 마치기는 하였다. 미진하기 그지없지만 단락은 지어야 한다. 대나무도 마디를 넘겨야 높이 치솟지 않겠나? 강호제현(江湖諸賢)께서 해량하시어 오류와 탈자, 누소(漏疏)함이 있을 것이란 전제 아래 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끝없고 혹독한 질책을 내려주시기도 아울러 바란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으나 미진한 부분이 있었음을 늘 마음 한 구석 짐처럼 지고 살았는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그동안 내었던 내 책을 모두 새로 <수정본(修整本)>으로 재출간했으면 하기에, 하늘이 내린 천기(天機)라 여겨 다시 세밀히 교정하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수정 작업조차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양과 내용이 너무 방대했고, 원고의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푯점, 문장 부호, 체제의 통일을 위한 미세한 문자표의 일관성 등, 이들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다’하고, 새벽에 일어나 연구실로 달려가 저녁 늦도록 컴퓨터 화면에 매달렸다. 이것이 바로 숙흥야매(夙興夜寐)인가 보다. 그런데 ‘즐거워서 하고 있기에’ 전혀 지루함이나 노고로움은 없다. 그저 어린 시절 산촌 소년, 아주 큰 등걸나무 톱질을 끝내면 다시 장작을 패고, 이를 밤중 달빛을 믿고 방고개와 놋재를 넘어 읍내로 팔러 나가, 구해오던 보리쌀 한 줌을 생각하며. 그때 아는 소녀를 만날까 봐 조바심을 하던 내 모습은, 이제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꿈이 된 나이다. 어쨌거나 다시 <수정본>으로 펴내 준다는 박대표에게 큰 고마움을 표한다.
2024년 甲辰 정월 대보름 전 雨水에 큰 눈 내린 날,
줄포(茁浦) 임동석(林東錫)이 부곽재(負郭齋)에서 다시 고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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